한국인에게 뿌리 깊이 내재되어 있는 고유문화- 정(情), 한(恨), 체면, 눈치, 가족주의, 연줄, 동류의식의 장점과 문제점에 대해 논하시오.
① 교과 내용뿐만 아니라 교과 외에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할 것.
② 자신 또는 개인의 삶을 통해 설명할 수 있음.
③ A⁴용지 2장 이상 분량으로 작성
Ⅰ.서론
우리가 살아가면서 거의 입버릇처럼 사용하는 말 중의 하나가 '체면'이란 말이다.
"체면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체면이 말이 아니다," "체면 좀 세워야겠다," "체면 좀 차려라." 등등
'체면'을 포함하는 어귀는 끝이 없을 정도로 많다.
체면이란 말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이처럼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체면에 대하여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한테 예쁘게 잘 보이려고 한다. 자연 상태의 동물이든 식물이든 간에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는 것을 보면 그건 아마 본능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처럼 남에게 잘 보이려는 체면문화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유독 심하다고 느껴진다. 쉬는 날 등산하는 사람들 모습을 보면 유명제품의 값비싼 등산복에 모자, 배낭, 신발을 착용하는데 아마 그 제품값은 웬만한 봉급생활자로서는 쉽게 엄두를 내기 힘들 것이다.
우리는 여윳돈이 생기면 어디에 쓰는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우선 얼굴과 몸매를 가꾸는 데 쓰고 몸에 걸치는 옷, 가방, 신발을 명품으로 바꾼다. 그리곤 자동차와 집을 바꾸거나 새롭게 단장한다.
이에 비해 서양 사람들은 겉치레보다는 관광 등을 통해 머릿속을 채우고자 노력한다.
우리는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다른 사람보다 먼저 구입해 유행에 뒤지지 않으려고 한다.
휴대전화의 신제품이 나오면 구식이 되지 않기 위해 신제품을 구입한다. 실제로 휴대전화의 약정기간 2년을 채우는 청소년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그만큼 휴대전화를 자주 바꾼다는 말이다. 남자들은 비싼 술 마시는 게 다른 사람한테 자랑거리가 되고 여자들은 고가의 보석과 명품을 지니는 게 자랑거리가 된다.
특히 결혼문화를 보면 체면문화의 극치를 볼 수 있다. 일본이나 서양 사람들의 결혼엔 아주 절친한 소수의 사람만 초대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가능한 여러 사람을 초대하고 호화스러운 곳에서 식을 올린다.
호화로운 예식장의 한 끼 밥값은 서민들의 한 달 밥값에 이르기도 한다.
그뿐인가? 고가의 예단과 혼수품 때문에 기둥뿌리 뽑힌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다른 사람의 이목 때문에 빚을 내서라도 고가의 혼수품을 장만해야 한다. 청첩장을 받으면 체면 때문에 안 갈 수도 없고 체면 때문에 부조금을 적게 낼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 액수에 따라 친분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체면은 우리만이 갖고 있는 우리 문화 특유의 현상은 절대 아니다. 중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유교문화권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서구나 미대륙 그리고 아프리카를 포함한 세계의 모든 문화권에서 정상적인 성인이라면 누구나 체면을 유지하거나 세우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체면에 대한 집착과 체면을 세우고자 하는 욕구는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Brown & Levinson, 1978, 1987).
그러나, 한국인의 체면 욕구는 좀 별난 데가 있다. 서구인이 스스로가 자율적인 사람이라거나 바람직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등 몇몇 제한된 영역에서 체면을 찾는데(Brown & Levinson, 1987) 비하여 한국인은 생활 전반에 걸쳐서 체면에 신경을 쓴다.
이를테면, 의식주의 선택, 승용차 등의 구입, 친구나 준거집단의 선택, 진학 및 취업, 학교 성적 및 진급, 선물의 선택, 명절맞이 인사 등 남의 이목을 끌 가능성이 있는 것이면 어떠한 행위나 소유물도 체면과 관련 지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임태섭, 1993).
체면이 우리 한국인의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처럼 높기 때문에 우리는 체면에 관한 한 서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체면이 손상당하는 것을 "죽기보다도" 싫어하며, "체면에 몰렸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필요한 경우에는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자신의 체면을 세우려 노력한다.
즉,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 지가 무척 관심거리다. 그래서 한국 사회엔 체면문화가 발달해 어디를 가던 남의 이목을 의식하곤 한다. 떨어지지 않고 충분히 입을 수 있는 옷도 유행이 지나면 입지 않고 새로운 옷을 사서 입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유명 인사들이 가끔 자살하곤 하는데 이런 것들이 남의 눈총을 의식한 체면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가 주소를 표기할 때의 순서를 보면 그 특징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소속이나 명분이 중요하기 때문에 광역시, 구, 동, 번지 그리고 성(姓)과 이름을 쓴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내가 중심이기 때문에 우리와 정반대로 자신의 이름을 가장 먼저 쓰고 성(姓), 번지, 동, 구, 광역시 순으로 표기한다.
그만큼 사고방식이 반대이다. 소속을 중시하는 우리 문화는 나를 평가하는 주변이 먼저지만, 나를 중시하는 서양 문화는 내 개인의 개성이 가장 우선시 된다.
이 장에서는 한국인에게 있어서 이처럼 소중한 체면이 어떠한 본질을 가졌는지를 규명해 보고자 한다.
풀어서 말하면, 한국인의 의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겨지는 체면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어떠한 요소들로 구조되어 있는가?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 어떠한 성격의 체면이 더 중요한 요소로 부상되는가 하는 문제들을 논의하는 것이 이 장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라 하겠다.
Ⅱ. 본론
1. 체면의 구조
앞에서 언급했듯이 체면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가치들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 사회든지 그 사회가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다양할 수밖에 없고, 사회의 구성원들이 내세우고자 하는 바람직하다는 이미지는 다양한 사회적 영역에 걸쳐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체면은 단순한 개념이 아니고 그 사회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만큼이나 복잡한 구조를 가지게 된다.
한국인의 체면은 크게 처신(處身), 인품(人品), 품위(品位), 역량(力量), 그리고 성숙(成熟)이라는 다섯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임태섭, 1994). 이 중에서 처신과 인품은 그 사람의 성격 또는 성품을 반영하는 것이며,
품위는 그 사람의 사회적인 위치를 반영하는 것이며, 역량과 성숙은 그 사람의 기능적 측면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인의 체면을 구성하는 이 다섯 가지 요소를 하나씩 논의해 보기로 하자.
1) 처신
처신은 겉으로 드러나는 몸가짐이나 행동거지가 얼마나 바람직한가를 일컫는 것으로서 채신, 치신 또는 체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유교적 전통은 사람의 몸가짐이나 행동거지를 그 사람의 성품 또는 사람 됨됨이와 연결해 생각하도록 하였다. 즉, 수양이 깊어 성품이 훌륭한 사람은 몸가짐을 가지런히 하고 행동을 바르게 하며 매사에 침착하고 도덕적으로 행동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유교적 전통은 오늘날에 이르러 한국인의 체면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 중의 하나인 처신이라는 가치를 형성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처신의 정도를 그 사람의 무게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처신을 잘하는 사람, 즉 채신 있는 사람은 "무겁게," 즉 진중(珍重)하게 행동하며, 처신을 잘못하는 사람, 즉 "채신머리없는 사람"은 "가볍게," 즉 경솔하게 행동한다. 따라서 처신을 잘한다는 것은 평소 신중하며 조심스럽게 침착하며 용의주도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주의가 세심하지 못하여 실수하거나 자신의 지위에 걸맞지 않은 경거망동을 하게 되면 결국 채신머리없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 앞에서 함부로 나서기를 꺼리고 "점잔을 빼려"하는 것이나 남의 눈치를 봐 가면서 "남하듯이" 행동하려는 것도 모두 처신을 잘한다는 이미지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처신을 잘하기 위해서는, 즉 채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진중함을 보여주어야겠지만 무엇보다도 몸가짐이 깔끔하여야 하며 행동거지가 사회의 규범에 일치하여야 한다.
첫째, 몸가짐이 깔끔하다는 것은 단순히 외양이 깨끗하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옷차림이 단정하고 외양이 청결하며, 품행이 방정하고 행동이 침착하며, 몸가짐이 조심스럽고 언행이 용의주도한 것 등을 종합하여 일컫는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몸가짐이 깔끔하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것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흔적이 역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몸가짐이 깔끔하지 못한 사람을 일러 우리는 "칠칠치 못하다"고 한다. 바지의 지퍼가 열린 줄도 모르고 돌아다녔거나, 세수 또는 화장을 못해 부스스한 얼굴로 남을 대하거나, 무단횡단을 하다가 경찰에게 붙잡혔거나, 침착하고 점잖게 행동해야 할 자리에서 덤벙댔거나, 이빨 사이에 고춧가루가 낀 줄도 모르고 남과 이야기했거나,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지위에 걸맞지 않은 말을 했을 때 흔히 듣는 이야기다.
둘째, 행동거지가 사회적 규범에 일치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런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이렇게 행동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 맞추어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는 서양 사회와는 달리 규범이 강한 사회이다. 규범은 법이나 규칙과는 달리 명문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모든 구성원들이 다 그렇게 행동하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행동의 틀을 의미한다. 한 사회의 규범이 강하다는 것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취하는 행동의 종류가 매우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강의에 임하는 모든 교수가 다 정장을 입는 대학이 있다면 이 대학 사회의 복장에 대한 규범은 매우 강하다 할 수 있다. 반대로, 교수들의 복장이 제각각이라 자기가 원하는 복장을 해도 누구 하나 나무랄 사람이 없다면 이 대학의 복장에 대한 규범은 매우 약하다 하겠다.
우리 사회가 강한 규범성을 가진 이유는 유교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교는 사회의 전체적 조화를 중시하여 사회 구성원 각각의 개성을 무시하고 그들의 지위와 역할에 따른 "격에 맞는" 행위를 강조하였다.
삼강오륜이나 도덕 지심과 예 등은 모두 이런 격에 맞는 행위의 본질을 규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유교의 경전은 더 이상 구속력을 갖지 못하지만 유교적 가치관은 많은 부분 그대로 남아 있어서 우리들의 행동을 규범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채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규범에 맞게, 즉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신의 격에 맞게 행동하여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자신과 같은 격을 지닌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면 규범에 어긋나게 되고 결국에는 채신을 잃고 만다. 이를테면, 교양을 보여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상스럽거나 저속한 행위를 할 때, 남들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때, 남자로서 다른 남자들이 하지 않는 짓을 할 때, 그리고 점잖게 행동해야 할 사람이 지나치게 "난한" 복장을 할 때는 규범을 벗어나게 되고 결국 "나이 값도 못 하는 사람"이라는 욕을 먹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남 앞에서 상스러운 말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저속한 책이나 영화를 보더라도 남의 눈을 피해서 하려 한다. 또한 남자들의 경우 집안에서는 곧잘 가사를 도와주더라도 아이를 업고 시장을 보러 나가는 일은 없으며, 나이 든 사람이 반바지 차림으로 거리에 나서는 일은 별로 없다.
2) 인품
인품은 그 사람의 인간 됨됨이가 얼마나 바람직한가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속어 중에 "그 사람 정말 진국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그 사람의 인품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품은 어느 사회에서나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특히 인품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서양에서는 어떤 사람의 자격조건을 따질 때 그 사람의 능력을 인품보다 더 중요시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OO이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돼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인품을 가장 중요한 자격조건의 하나로 보아 왔다. 따라서, 한국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자신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인품의 소유자로 비치기를 바라고 있다.
인품이 탁월하다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를 갖추어야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신뢰감이 있어야 하고 언행이 진실하여야 하며 경위가 발라야 한다. 첫째 신뢰감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본성이 진실하여 믿을만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 중에서 "그 사람은 참한 사람이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그 사람의 본성이 진실하여 믿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신뢰감이 인품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인 것으로 보인다. 유교적 전통인 강한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인간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아 왔다. 이 중에서 신(信)이 신뢰감을 뜻한다는 것은 명백한 것이지만 인, 의, 예, 지 등도 모두 신뢰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서양에서도 신뢰감은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로 인식되어 왔다.
그리스 시대의 석학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이라는 책에서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무기 중의 하나가 인품(Ethos)이라고 했으며, 인품이란 신뢰감과 선의(善意) 그리고 지혜 등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것이라 했다. 따라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신뢰감을 인품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인식하고 있다 하겠다.
신뢰감이 있는 사람으로 비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면에서 진실하게 행동하여야 한다. 이를테면 잘난 체하지 않아야 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여야 하며, 남을 기만하여 불신을 초래하지 않아야 하고, 자신의 도리나 의무를 다하여야 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따라서, 남에게 큰소리만 쳐 놓고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거나, 남 앞에서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짓을 하거나, 남의 불신을 초래하는 행동을 하거나, 자신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거나, 남에게 불성실한 모습을 보여주게 될 때는 결국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비치고 만다.
둘째, 언행이 진실하다는 것은 말을 삼갈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말을 삼간다는 것은 무조건 침묵을 지킨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릇된 말을 하지 않고 일단 말로 뱉어낸 일이라면 몸소 실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는 예로부터 진실한 언행을 중시하여 말을 앞세우거나 자기를 내세우기 위하여 "떠벌리는" 사람은 인품에 하자가 있는 사람으로 치부되어 왔다. 이러한 전통은 유교의 가르침에 기인하는 것으로, 유교에서는 말을 삼가고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사람만이 군자가 될 자격이 있다고 보았다.
언행이 진실한 사람은 확실하지 않거나 근거가 없는 말을 하지 않으며, 자신이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며, 자신을 내세우기 위하여 말부터 앞세우지 않으며, 남에게 이기기 위해서 억지를 쓰지 않는다. 따라서, 남 앞에서 유식한 체하다가 들통이 났거나, 남이 하면 흉보던 행동을 자신이 하다가 들키거나,
쓸데없이 자기 자랑이나 하고 다니거나, 남 앞에서 자신이 옳다고 우겼는데 결과가 틀리게 나타날 때는 언행이 진실하지 못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마지막으로, 경위가 바르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를 성실히 이행할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우 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남의 베풂을 받았을 때는 보답할 줄 알아야 하며, 대범한 마음가짐으로 행동하여야 하며, 도리에 맞도록 행동하여야 하며, 자신의 의무를 다하여야 하며, 예의 바르게 행동하여야 한다. 따라서, 남에게 도움만 받고 보답하지 않거나, 사소한 일에 신경을 써서 일을 그르치거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거나,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거나, 예의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할 때는 경우가 바르지 못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3) 품위
앞에서 논의한 처신과 인품이 그 사람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품위는 그 사람의 사회적 또는 경제적 지위를 반영한다. "품위가 있다"는 말은 그 사람의 겉모습이나 행위 또는 사는 모습이 사회적으로 위치가 높거나 경제적으로 형편이 좋은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 또는 외적인 풍요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반대로 "품위 없다"는 말은 그 사람의 겉모습이나 행동거지 또는 사는 모습이 여유를 보여주지 못하거나 자신의 지위에 걸맞지 않게 초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품위는 외형보다 실질을 중시하는 실용주의 사회에서는 별로 중요한 사회적 가치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외형과 실질을 연관시켜서 생각하기 때문에 품위를 매우 중시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형과 실질의 관계를 묘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서 실질이 뛰어난 사람이 외형도 잘 갖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외형을 잘 갖춘 사람이 실속도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외적인 여유를 과시하여야만 사회적인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적지 않다. 우리는 흔히 체면을 보여주기 위한 것 또는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품위가 우리의 체면에서 그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금전적인 여유를 보여야 하며, 외양을 우아하게 꾸며야 하며, 가세가 번창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첫째, 금전적인 여유를 보여준다는 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일에 돈을 "펑펑" 써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남과의 금전 관계에서 인색하게 굴지 않고 돈을 써야 할 때 잘 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흔히 "품위유지비"라는 말을 쓰는데 이것은 자신의 지위를 과시 또는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금전적인 여유를 보이고자 하는 사람은 씀씀이에 있어서 통이 커야 하고, 남에게 베풀 줄 알아야 하며, 궁상을 떨지 않아야 하고, 남에게 빚을 지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이 부조나 성금을 낼 때 남이 내는 만큼은 내려 하고, 다른 사람을 접대할 때 과용하고, 남과 식사할 때 게걸스레 보이지 않도록 노력하며, 음식값이나 술값을 서로 내려 하는 것은 모두 금전적 여유를 보임으로써 품위를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둘째, 외양이 우아하여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차림새가 화려하여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으로 드러나는 모든 것들에 우아함이 배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적인 우아함이 사회적 지위 또는 경제적 형편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믿는 경향이 있다.
외적 우아함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는 우아한 옷차림, 잘생긴 배우자, 그리고 고상한 취미 등을 들 수 있다. 사람들이 옷차림을 우아하게 하기 위하여 많은 돈을 쓰고, 배우자의 치장에 관심을 기울이며, 남보다 더 고상한 취미나 기호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모두 외양을 우아하게 꾸밀만한 여유가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품위를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가세가 번창한다는 것은 일이 잘 풀려 유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번창한다는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매우 다양하다. 이를테면, 좋은 학벌, 잘 풀린 부모·형제, 좋은 집과 차, 떵떵거리고 사는 모습, 그리고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유 등이 모두 번창한다는 이미지를 가져다준다.
사람들이 엉터리 졸업장이라도 따서 학벌을 높이려 하고, 잘된 부모·형제를 자랑하며, 형편에 과분한 집과 차를 장만하고, 과용해서라도 거창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려 하며, 능력이 닿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남에게 선심을 쓰려하는 것은 모두 가세가 번창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품위를 높이고자 하기 때문이다.
4) 역량
역량이란 개인적으로 갖추어야 할 지식이나 자질보다는 사회적으로 입증된 능력, 다시 말하면 사회적인 인정이나 성공을 통하여 입증된 능력을 의미한다.
우리가 출세한 사람 또는 진급이 남보다 빠른 사람을 두고 "그 사람 능력 있다"라고 표현하는데,
이때 유능하다는 의미가 바로 이 역량이라는 체면 요소를 평가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역량은 그 사람을 중심으로 개별적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비교되어 상대적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어떤 사람의 역량은 그가 어떠한 일을 해낼 수 있느냐 또는 없느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비슷한 조건에 처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때 얼마나 "잘 되었는가?"를 따져서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 뒤지지 않는다" 또는 "남부럽지 않게 성공했다"는 등의 상대적인 조건들이 그 사람의 역량을 평가하는 주요 기준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역량은 그 사람의 실제적 능력보다는 그 능력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결과에 더 중점을 둔다. 따라서, "남의 인정을 받는다," 또는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등의
외형적인 조건들이 역량을 평가하는 주요 기준이 된다.
역량 있는 사람으로 비추어지기 위해서는 비슷한 조건을 가진 다른 사람들에 뒤져서는 안 된다. 따라서, 입사동기생보다 승진이 늦어지거나, 친구들보다 출세가 늦거나, 자신의 분야에서조차 남의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사회적으로 남들만큼 성공하지 못한 경우에는 역량 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기가 어렵게 된다.
따라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 앞에 엉터리 직함이라도 내세워 자신이 성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과시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길 가는 사람들을 보고 뒤에서 "사장님"하고 부르면 반 이상이 돌아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외형적 역량을 중시하고 있다.
5) 성숙
성숙이란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조건을 의미한다. 우리말에 "자기 앞가림은 한다"
또는 "제 앞가림도 못한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기본적으로 해내야 할 일들을
해낼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으로 그 사람의 성숙도를 평가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성숙하다는 이미지를 갖추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자질과 자율성을 가져야 하며,
남의 존중과 관심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자질을 갖춘다는 것은 자신에게 맡겨진 바를 제대로 수행해 낼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을 갖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질은 위에서 논의한 역량과는 달리 남과 비교되어 상대적으로 평가되기보다는 당사자가 자신의 책무를 얼마나 잘 수행해 낼 수 있는가 하는 개별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에 의하여 평가된다.
자질이 있는 사람은 책임을 완수할 줄 알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실패하지 않으며, 일을 그르치지 않고,
남에게 누가 되지 않으며, 일에 관한 필수지식을 갖추고 있고, 자신의 권리를 수호할 줄 안다.
따라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완수하지 못하거나, 남이 자신에게 믿고 맡긴 일에 실패하거나, 일을 잘 못해서 핀잔이나 꾸중을 듣거나,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욕을 먹거나, 다른 사람이 물어본 것을 잘 모르거나, 남에게 모욕을 당하고도 대항하지 못할 때는 자질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둘째, 자율성을 갖춘다는 것은 남의 감독을 받지 않고 스스로 일을 결정할 수 있는 자주성과 남의 도움 없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립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주적이고 자립적인 사람은 남의 지시를 받지 않으며, 남의 감독을 받지 않고, 남의 도움을 구걸하지 않으며, 경제적으로 자립하고자 한다. 따라서 남의 지시대로 행동해야 하거나, 다른 사람 앞에서 모욕이나 무안을 당하거나, 무시를 당하면서도 계속 부탁을 해야 하거나, 자립할 나이인데도 부모의 신세를 지게 되면 자율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되어
"변변치 못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셋째, 남의 존중을 확보한다는 것은 타인에게 자기 의사와 치를 존중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자질이 부족하고 자율성이 낮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기 쉽지만 자질을 발휘하고 자율성을 확립함으로써 그들의 존중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남의 존중을 받는 사람은 남들로부터 무시당하지 않으며, 자신의 의견을 존중받고, 간섭받지 않으며, 자신의 위치를 인정받는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자기 말을 비웃거나 경청하지 않을 때, 남이 자신의 의견을 무시할 때, 다른 사람이 자기 일에 간섭할 때,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자신의 위치를 인정해 주지 않을 때 사람은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이미지를 유지할 수가 없게 된다.
마지막으로, 남의 관심을 확보한다는 것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그들 중의 하나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지 못하여 남으로부터 배척을 받지만 인간관계를 잘 영위하기 때문에 남들로부터 호감을 받으며 그들의 일부로 수용된다.
남의 호감을 받는 사람은 그들로부터 소외당하지 않고, 거절당하지 않으며, 제외당하지 않고, 그들의 관심을 끈다. 따라서, 모임에서 남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거나, 남에게 정면으로 거절을 당하거나,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소외당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관심할 때 남으로부터 호감을 받는다는 이미지를 유지할 수가 없다.
성숙이라는 체면 요소는 다른 체면 요소들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첫째, 처신과 인품 그리고 품위와 역량은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경향이 강한 데 반하여 성숙은 상호작용 중인 상대방과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결정되는 경향이 강하다. 처신과 인품 그리고 품위와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자신의 격에 맞도록 행동하고 사회가 자신에게 기대하는 만큼의 성공을 거둠으로써 사회적인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성숙하다는 이미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 것보다는 자신과 상호작용 중인 상대방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이와 같은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다른 네 가지 체면이 당사자의 사회적인 격을 중심으로 한 비교적 객관적인 기준을 갖고 있는 데 반하여 성숙은 객관적인 기준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어떻게 취급하느냐 하는 상황적인 조건에 의하여 좌우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처신과 인품 그리고 품위와 역량은 스스로가 노력하여 사회적 기준이나 기대에 맞도록 행동하면 유지되는 것이어서 다른 사람들의 개별적인 협조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는 객관적 기준에 따라 스스로가 단독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성숙한 사람으로 취급하겠다는 협조적인 자세로 임할 때만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성숙은 자질과 자율성 그리고 존중과 관심의 확보라는 4가지 하위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자질이 있다는 이미지는 그 사람이 자기 일을 얼마나 잘 처리하느냐 하는 상대방의 주관적 판단에 달려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그 능력을 인정해야만 성취할 수 있는 것이며, 자율적이고 존중받는다는 이미지는 상대가 자신의 입지를 고려하여 통제나 간섭하지 않아야만 유지할 수 있고, 관심을 받는다는 이미지는 상대가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해 주어야만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나머지 네 체면 요소가 성인 중에서도 특히 빼어난 사람들만이 갖출 수 있는 가치지만, 성숙은 모든 성인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가치이다. 처신, 인품, 품위, 그리고 역량은 훌륭한 행동 또는 성공을 통하여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아야 성취할 수 있는 것인 만큼 아무나 갖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 네 가지 체면 요소는 어느 정도 인격 수양이 이루어지고 사회적 지위가 확보되어야만 인정받을 수 있어서 수양 중인 젊은 사람들이나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이를 갖추지 못해도 큰 흠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성숙이란 수양의 깊이나 지위의 높낮이와 관계없이 성인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는 갖추어야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요약하면, 처신과 인품 그리고 품위와 역량은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체면이어서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격이 있는 사람들이 특히 중시하는 체면이라면, 성숙은 상호작용 중인 상대방의 태도에 의해서 결정되는 체면이어서 한 사람의 성인으로 대접받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다 갖추고 싶어 하는 체면이다. 따라서 사회적인 격보다는 개인적인 기능을 중시하는 서양에서는 성숙이 가장 중요한 체면 요소로 간주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서양의 체면 연구가들이 내리는 체면의 정의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서양적 체면 연구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는 Brown과 Levinson(1987)은 체면이란 성숙한 인간이 갖는 기본욕구로서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와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자 하는 욕구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남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란 자기 자질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와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구의 결합체이며,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자 하는 욕구란 자신의 자율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와 자기 의사나 의지를 존중받고자 하는 욕구의 결합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Brown과 Levinson은 자질과 관심의 확보 그리고 자율성과 존중의 확보, 즉 성숙하다는 이미지를 구성하는 4대 요소를 서양적 체면의 핵심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2. 체면문화의 문제점
(1) 명분을 살리기 위해 실리까지 버리게 만든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체면을 중요시한 나머지 꼼꼼하게 챙기기보다는 주먹구구식으로 넘기는 경향이 있고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에서도 체면을 내세우면서 가식적으로 대하는 일이 많다.
그로 인해 실속 있는 행동을 취하기보다는 위선적인 행동을 취하게 되고 그것이 결국엔 대충 대충하면 된다는 사회현상을 만들어낸다. 그러다 보니 사회가 법과 질서에 철저하고 합리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외형적인 형식만을 중요시하게 된다.
체면문화의 대표적인 것이 결혼식장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흔히 결혼은 인륜지대사라고 한다.
그래서 결혼하게 되면 체면을 세우기 위해 분수에 넘치는 호화결혼식을 하게 되고 진정한 의미의 결혼식보다는 남에게 보여주는 결혼식을 하게 된다. 그것이 결국 허례허식으로 표현되어 적지 않은 사회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결혼에서 가장 문제시되는 것이 결혼식 하객의 동원이다. 어느 결혼식이든 간에 우선 하객들이 많이 참석했는가를 먼저 고려한다. 하객들이 많이 참석하면 괜찮은 결혼식이고 하객들이 적으면 문제가 있는 결혼식으로 인식하는 것이 다반사다. 그러다 보니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 하객들을 동원하는데 열을 올리고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조건 청첩장을 보내는 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하객들 또한 체면을 상당히 중시한다. 청첩장을 받기는 했지만 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참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다 보니 결혼식 자체가 형식적이고 가식적으로 행해지고 전에 서로에게 부담을 주는 결혼식이 된다.
(2)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기 위한 삶을 지향하게 된다.
단적인 예로는 일반 가정의 거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 생활을 한다. 아파트에는 으레 거실이란 공간이 있고 거실을 어떻게 꾸미느냐를 상당히 중요시 한다.
그리고 거실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공간이어서 항상 그럴듯하게 꾸며놓는 데 신경을 쓴다.
그러나 문제는 거실이란 공간이 일반가정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다. 그 넓은 공간을 다른 사람을 위해 항상 비워두는 것도 문제가 있다. 주변 사람들이 항상 방문하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쓸모없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거실이란 공간에서 가장 다른 사람을 의식해 설치한 것이 장식장이다.
장식장에는 그야말로 ‘우리 집은 이런 집이다’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드러낸다. 장식장에는 주로 양주나 크리스털, 도자기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이들 물건을 굳이 장식장에 비치할 필요가 있는가. 오히려 보이지 않은 곳에 두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이는 결국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나를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고 있음을 말해준다. 단적으로 말하면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는 타인 지향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이러한 현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독일을 보더라도 거실에는 장식장이라는 것이 없다. 거실에 장식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책장이 있다. 독일인들이 장식장을 설치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장식장을 설치할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서구인들은 개인주의가 상당히 발달하였다. 우리의 나라처럼 간섭주의는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은 남이 어떻게 사는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에 만족한다. 이웃 사람들이 얼마나 넓은 집에 살든, 얼마나 휘황찬란하게 집안을 꾸미고 살든 관심이 없다. 자신이 스스로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살면 그만이다.
Ⅲ. 결론
결국 체면문화는 어쩌면 우리나라만이 갖는 특이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체면문화는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체면으로만 살아가기에는 너무 힘들고 무의미하다.
인생은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자신을 위한 인생을 만들기도 어려운 현실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의식해 생활한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인생은 스스로 책임감 있게 살아가야 한다. 체면문화를 지나치게 중요시하다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을 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삶이 되고 만다.
체면문화는 우리의 일상에 아직도 뿌리 깊게 박혀있다. 그리고 체면문화는 무의식중에 타인을 의식하는 비주체적인 삶을 살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사회도 농경사회가 아니라 이미 산업사회로 바뀐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과소비를 촉진하는 체면문화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실속 있고 합리적인 생활을 추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어느 조사에 의하면 체면을 중요시하고 과시욕이 큰 사람일수록 행복감이 낮은 것으로 나타난 결과를 보더라도 이젠 체면문화도 버려야 한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면서 살기보다는 자신을 위한 참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주체적인 행동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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